라오스는 내 운명
라오스는 내 운명
라오스는 내 운명
2016.05.20 17:56 by 김상욱

시간을 거슬러 지난 2014년 말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프로야구팀 감독직에서 물러난 지 한 달째. 야인으로 돌아온 이만수 감독은 처음으로 라오스를 방문하게 됩니다.

현역 감독 시절 사재를 털어 야구용품을 보낸 후, 마음에 항상 품고 지냈던 라오 브라더스 야구단. 그들과 첫 대면을 할 생각에 이만수 감독은 너무나 설렜습니다. 아래는 이만수 감독의일기에서 발췌한 내용인데요.

참으로 신기한 것은 사복 입었을 때보다 야구복 입을 때가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른다는 것이다. 야구한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기분이 너무 좋다. 비록 프로야구 현장에서 감독생활을 하지 못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야구복을 입고 라오 브라더스 선수들을 가르친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비행기 안에서 일기도 쓰며 이런 저런 상념에 빠진지 어느덧 6시간. 이만수 감독은 라오스 비엔티안 공항에 도착해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그가 탄 차는 어느덧 울퉁불퉁한 잔디가 심겨진 마을 운동장에 도착했는데요. 이만수 감독이 보내준 SK 와이번스의 유니폼을 입은 선수, 또 한국에서 후원 받은 사회인 야구복을 입은 선수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만수 감독의 입가에도 절로 미소가 그려졌습니다.

부를 때까지 뒤돌아보기 있기 없기
자네, 고수인가?
자네는 야구 끝나고 내 마음의 불 좀 꺼주겠나?

“사바이디(안녕하세요).”

이만수 감독이 라오스어로 인사하자, 선수들은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고 했습니다. 라오 브라더스 야구단을 도와달라며 이메일을 보냈던 교민 제인내씨가 선수들에게 미리 교육을 시켰던 게죠.

하지만 이내 선수들의 면면을 살펴본 이만수 감독은 암담해졌습니다. 20대 초반의 청년들은 우리나라 중고생들보다도 덩치가 작았고, 10대 후반의 청소년들은 마치 초등학생 같아 보였습니다. 심지어 여자 선수도 몇 끼어 있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라오스의 공식적인 첫 야구단인데…. 한국의 프로팀에 비하면 정말 오합지졸 같은 모습이었죠.

너희들... 오늘은 발로 공 안 잡았으면 좋겠어

교민 제인내씨가 이만수 감독의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감독님. 아이들이 야구를 잘 못해요.”

“당연한 거 아닙니까? 시작한지 얼마나 됐다고요. 실제로 야구 경기를 본 적도 없잖아요.”

제인내씨는 행여 이만수 감독이 라오 브라더스 선수들을 보고 실망할까봐 걱정이 됐던 것입니다. ‘아직 야구가 뭔지도 잘 모르고 언어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을 데리고 내가 무엇을 가르친단 말인가….’ 이만수 감독 역시 막막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이라면 나 역시 최선을 다해 가르쳐보자’고 다짐했습니다.

이만수 감독은 미리 짜놓은 훈련스케줄을 진행하기 위해 캐치볼과 펑고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선수들이 공을 너무 잘 잡아서 도리어 이만수 감독은 놀랐습니다. 선수들의 왜소한 체격이 오히려 빠른 몸놀림이라는 장점으로 승화된 것입니다. ‘조금만 더 가르치면 충분히 희망이 있겠다’는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이만수 감독은 ‘특유의 스킨십’을 통해 선수들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야구 고유의 스포츠 정신을 심어줬습니다. 파이팅 넘치는 모습으로 선수들이 못해도 칭찬, 잘하면 더 칭찬을 하는 등 밝은 분위기 속에서 훈련을 하다 보니 선수들과 조금씩 가까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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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고치는 이만수 감독과 수비 훈련하는 라오 브라더스 선수들

그렇게 1년여가 흘렀습니다. 제가 라오 브라더스 야구단을 찾았던 2016년 1월, 마침 오전 훈련을 끝낸 선수들이 훈련장 밖으로 나왔습니다. 대부분이 10대 아이들이었고 간혹 20대 청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수들이 향한 곳은 불량청소년들이 좋아할법한 으슥한 곳이었습니다. ‘이 녀석들 혹시…’하는 마음으로 제가 따라붙는 것을 느꼈는지, 선수들은 연신 뒤돌아보며 미소를 짓습니다. 그리고는 저를 보며 ‘화이팅’만 외칩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제가 자주 ‘화이팅’을 외쳤더니 그새 그걸 따라하는 겁니다.

내가 얼른 라오스어 배울게. 더 깊은 대화 나눠 보자

야구 훈련장 뒤편에 마련 된 공간에서 선수 중 한 명이 화로 같은 곳에다 불을 붙입니다. ‘뭐 하는 거지…?’ 궁금증은 이내 풀렸습니다.

인류가 발견한 최고의 아이템
점심은 국수였다.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국수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소박한 한 끼에 감사해 하는 선수들

현재 라오 브라더스의 선수들은 총 28명 정도 되는데, 처음에는 45명이었다고 합니다. 그때는 이렇게 점심을 해 먹을 공간도 없었습니다.

선수를 선발했을 초창기엔 정말 아무런 야구 인프라가 없었고, 오직 이만수 감독이 보내준 유니폼, 글러브, 공 그리고 방망이 몇 개가 전부였습니다. 야구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뙤약볕을 피할 곳조차 없이 힘든 상황이다 보니 점점 선수들이 떠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처음 선발했던 45명 중 13명이 남았고 그 후에 다시 15명 정도 더 선발해서 현재 라오 브라더스 선수들은 총 28명이 되었습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온 선수들이 저와 눈이 마주치자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눈인사를 합니다. 그 때 지나가던 한 선수를 이만수 감독이 환한 미소를 머금고 와락 끌어안으며 제게 소개를 했습니다.

“얘가 우리 팀 유격수예요. 아주 빠르고 타격도 곧잘 합니다”

아빠 미소 짓는 이만수 감독과 라오 브라더스 선수 '웡'
그러나 헐크의 미소는 미끼였을 뿐. 이내 특타 훈련에 돌입했다.

“감독님, 처음엔 어떻게 선수들을 모으셨는지 궁금한데요?”

“선수들은 제인내 대표님이 다 모았죠. 선수 선발 전권은 제인내 대표님에게 있습니다. 사업하랴 야구선수 선발하고 관리하랴 아주 바쁘셨을 겁니다. 허허.”

곁에서 미소만 짓고 있던 제인내씨가 입을 열었습니다.

“전단지를 만들어서 길에도 뿌리고 학교 앞에서도 나눠줬죠. 벽보도 붙였고요. 제가 주차장에서 캐치볼 할 때 구경하던 아이들 몇 명이 고맙게도 도와줬어요. ‘이게 뭐지?’라며 호기심에 야구 테스트를 받으러 온 애들의 면면을 보면 정말 다양했습니다. 가난한 아이들부터 부잣집 아이까지 총 45명이 왔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입단 테스트를 하셨나요?”

“애들이 당연히 야구가 뭔지 모르잖아요. 본 적도 없고요. 그래서 제가 휴대폰으로 야구 경기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알려주고 테스트를 진행했죠. 그런데 막상 테스트 때는 왼손에 글러브를 꼈는데도 오른손으로 공을 잡다가 공이 손가락 사이에 껴서 찢어진 아이, 자신에게 오는 땅볼을 발로 먼저 툭 차서 세운 후에 공을 잡는 아이 등 각양각색이었죠. 하하.”

“테스트 결과는 어땠습니까?”

“당연히 전원 합격이었죠. 실력을 가늠할 수도 없었을 뿐더러 합격의 기준은 야구 실력이 아닌 ‘야구를 통해 삶의 희망을 갖고 싶다’는 의지였으니까요.”

“하지만 참가선수 중에 부잣집 아이도 있었지 않나요?”

“부잣집 아이에게 ‘넌 부잣집에 사니까 우리 팀에 들어올 수 없어’라고 말하는 건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제 선발 기준은 ‘빈부의 수준’이 아닌 ‘삶에서 작은 희망이나마 찾으려는 의지’였거든요. 하지만 애석하게도 대부분이 가난한 집 아이들이다 보니 부잣집 아이들이 함께 어울리는 것에 힘들어 했습니다. 그들이 자연스레 팀을 떠나면서 정리 아닌 정리가 됐죠.”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인데. 내일은 라오 브라더스의 해가 뜬다.

“선수들이 야구를 통해 정말 희망을 갖게 될까요?”

“워낙 가난한 아이들뿐이라서 처음엔 먹을 것으로 유혹 아닌 유혹을 했어요. 하하. 지금 당장 배가 고픈데, 제가 아무리 ‘너희가 야구를 통해 꿈과 희망을 찾을 거다’라고 말해봤자 뜬구름 잡는 얘기로 들릴 테니까요. 그래서 잡채, 어묵탕, 치킨 등 ‘너희들이 야구하면 이런 거 먹을 수 있다’로 동기부여를 줬죠. 그런데 아이들이 더 좋아하는 게 있더라고요.”

“그게 뭐였죠?”

“물이에요. 시원한 물이요. 가난하다보니 집에 냉장고도 없거든요. 저희는 물도 이곳 사람들 기준으론 비싼 것을 사서 마시다보니 아이들에겐 귀한 것이죠. 그래서 저는 커다란 아이스박스에 얼음을 넣고 그 안에 작은 생수병을 가득 담아 훈련 때 마음껏 마시게 해요. 선수들은 그런 상황을 두고 ‘내가 대접받고 있다’고 느끼는 거예요. 한국에서는 정말 별 거 아닌 거잖아요. 그런데 라오 브라더스 선수들은 이런 사소한 것에서 동기부여를 얻고 있습니다.”

문득 선수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습니다. 이 선수들은 야구를 왜 하는지, 야구가 이들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말이죠. 다음 4화에서는 라오 브라더스 선수들의 사연과 야구장 건립을 위해 뛰어 다니는 이만수 감독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몸을 잘 푸는 것 역시 야구를 잘 하기 위한 방법이다.

'헐크' 이만수의 꿈 “야구로 받은 사랑, 야구로 갚겠다!” 대한민국 프로야구의 역사와 함께 했던 이만수 前감독(SK 와이번스)이 야구 불모지 라오스에서 펼치는 유소년 육성기. 라오스 판 ‘엘 시스테마’의 기적을 만들어가는 현장을 만나본다.

이 콘텐츠는 헐크 파운데이션(Hulk Foundation)의 스토리펀딩 프로젝트 내용을 재가공한 것입니다. 라오 브라더스와 헐크 파운데이션 후원에 관심이 있는 독자분들께서는 재단 페이스북(facebook.com/leemansoo22)으로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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