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낭만을 품은 거리 ‘via dei coronary’
나른한 낭만을 품은 거리 ‘via dei coronary’
나른한 낭만을 품은 거리 ‘via dei coronary’
2016.04.20 10:42 by 김보연

도시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이자 관광지인 로마. 세계 각지에서 찾아오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찾아 본 정보들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발걸음을 재촉하는 이들에게, 잠시 들러 '숨 고르기' 하길 바라는 길이 있다. 나보나 광장과 판테온의 경이로움 전에 당신만의 장소를 찾을 수 있는 길, 그 길이 바로 이번 회에 소개할 ‘VIA DEI CORONARI’다.(VIA는 이탈리아어로 ‘길’을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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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소개했던 코르소 거리의 여운을 간직한 채 발길을 옮겨본다. 성베드로 광장(Piazza San Pietro)에서부터 쭉 뻗은 거리의 이름은 이름하여 ‘화해의 길’. 이 길을 따라 조금만 걷다 보면, 테베레 강변과 만나고, 그곳에선 그 유명한 ‘천사의 성’과 마주할 수 있다. 야경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 자동적으로 연신 셔터를 누른다. 그리고 로마의 저녁은 내게 속삭인다.

‘조금만 더 걸어봐.’

로마를 대표하는 관광 명소 ‘천사의 성(Castel Sant'Angelo)’

로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한다. 지도를 확인해보니 ‘나보나 광장’과 ‘판테온’이 금방. 이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들어서게 되는 골목이 바로 ‘VIA DEI CORONARI’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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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A DEI CORONARI’의 전경

‘CORONA’. 우리에겐 맥주 이름으로 익숙하지만, 가톨릭에선 왕관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묵주에 들어가는 하나의 알을 일컫기도 한다. 그리고 묵주를 파는 사람들을 칭하던 단어가 바로 ‘Coronari’다.

이 길은 로마시대 때부터 존재했다. ‘쭉 뻗었다’는 단순한 의미의 ‘Via recta’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중세시대에는 가죽을 파는 골목이었단다. 르네상스시대, 15세기 말의 교황 식스투스 4세가 이 곳을 정비했다고 전해진다. 교황 식스투스 4세라면, 미켈란젤로의 천장 벽화와 제단화가 그려진 바로 그 성당을 지은 분 아닌가. 그런 분이 왜 이 길에 관심을 가졌을까? 아마 베드로 성인의 죽음으로, 바티칸 땅을 찾는 순례객들이 무사히 도착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했을 것이다. 하염없이 성스러운 곳이기도 하지만, 당시 유망 여성(다시 말해 고급 콜걸)들의 거처가 위치한 골목이기도 했단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마키아밸리 <군주론>의 모델이었던, ‘체사레 보르지아’의 연인 피아메타 미카에리다.  

이렇듯,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켭켭이 쌓아왔던 Coronari 길은 사실 로마 거주민 나에게도, 나의 친구 동료들에게도 애정을 듬뿍 받는 곳이다.

로마의 관광중심지인 바티칸과 나보나, 판테온, 테베레 강의 근처에 있어 사시사철 붐비는 곳이지만, 한 코너 꺾어 들어가면 어쩜 이리 평온한지. 주말 점심에는 멋진 선글라스를 쓴 로마인들이 카페 노상자리에 앉아서 햇빛을 즐긴다. 내가 이 길을 걸은 것은 4월. 로마의 봄은 아무 일이 없어도 나가게 한다고 했던가. 고운 색의 옷을 가볍게 걸친 사람들이 골목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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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중간에 있는 젤라또 집은 관광객이 뜸한 시간에 열심히 재료를 손질한다. 음식을 넘어 자신들의 디저트까지도 자부심이 대단한 이탈리아사람들인지라, 레몬을 손질하던 아저씨는 내가 렌즈를 들이대자 씩 웃는다. 로마에는 3대 젤라또 집이 유명하다. 한 분야에 랭킹을 매기고 이 랭킹을 따르는 순례적 여행은 바쁘고 소중한 여행 일정을 효율적으로 보내고 싶은 마음이 반영된 트렌드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론, 3대 젤라또는 잠깐 건너 뛰고 작은 골목에 생각지도 못한 가게에 들어가서 가이드가 추천하는 맛이 아닌, 내가 먹고 싶은 맛을 먹으며 그대들의 여행을 만들어가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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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onari 길에는 (개인적으로) 로마에서 손 꼽을 수 있는 소중한 젤라테리아 하나가 있다. 사람들을 보시라. 번호표를 뽑고 기다려야 할 지경이지만 굳건히 기다려 생강맛과 피스타치오맛 젤라또를 맛본다.

한 켠에는 이미 젤라또를 쟁취한 이들이 참 ‘유럽스럽게’ 앉았다. 누군가에겐 바쁜 여행의 일정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곳일 수도, 다른 누군가에겐 사무실에서 짬 내 나온 달콤한 일탈일지도.
관광 중심가는 피했다지만, 관광객을 아예 피할 순 없다. 색색의 모자, 스카프를 맨 관광객들은 줄을 맞춰 좁은 길을 지나간다. 그들도 이 골목의 낭만을 갖고 이동하는 걸까?

이 골목엔 중세부터 가죽가게가 있었던 터라 지금도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가죽 제품을 파는 가게들이 있다. 색색의 가죽가게와 아틀리에, 유리공예 가게들이 들어차있다. 관광 중심지의 다른 가게들보다 여유 있는 모습이다. 내가 사진을 찍어도, 구경을 해도 주인들은 나른한 오후에 빠져있다. 이렇게 길은, 과거의 성스러움과 드라마를 품은 채 다른 이야기를 구성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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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골목에 애착이 가게 되는 이유는 골목 하나마다, 골목에 있는 가게 하나마다 뭐 하나 같아 보이는 것이 없다는 점이다. 편리하고 깨끗한 한국의 골목은 서울과 수원 대전의 모습이 같다. 한국에선 어딜 가나 스타벅스의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고, 파리바게트의 빵을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로마에선 동네마다 골목마다 다른 빵을 먹고 커피를 마신다. 그러다 보면 각각의 골목에 애정이 쌓이고 다른 곳에서 이 골목을 그리워한다. 이 지점에서 로마의 매력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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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보연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죠'걷고 또 걷는다.' 걸작이라 불리는 도시 ‘로마’를 백 배 만끽하는 비법이다. 한때 전 유럽의 정치‧경제‧사회‧문화가 드나들었던 로마의 길은 그 자체로 하나의 보물. 작은 골목길이든, 큰 광장길이든 흥미로운 이야기와 사연이 즐비하다. 로마살이 1년 차 에디터가 전하는 ‘로마의 길’ 이야기를 통해, 콜로세움과 바티칸 너머의 진짜 로마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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