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의 봄날을 기다리며, 영화 <인턴>
소수자의 봄날을 기다리며, 영화 <인턴>
소수자의 봄날을 기다리며, 영화 <인턴>
2016.03.14 18:41 by 돔돔


세상이라는 복잡한 퍼즐을 영화로 푼다. 비약과 억측이 난무하는 다분히 개인적인 영화 독법. 지금 여기 한 편에 영화가 도마 위에 오른다.

사람은 무엇으로 죽는가? 영화 <위플래쉬>를 통해 살펴보는 죽음의 세 가지 유형.

“진짜 어른과 어른같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아요.”

(30대 CEO녀, 줄스 오스틴)

“1년 반 전에 혼자 창업해서 직원 220명의 회사로 키운 게 누군지 잊지 말아요.”

(70대 인턴남 벤 휘태커)

<인턴>, 소수자의 멋진 케미

학창 시절 나름 큰 깨달음이라고 생각한 것이 있었다. 바로 소수자의 개념이다. 소수자의 기준이 단순히 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크기에서도 비롯한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참으로 신선했다. 왜 여성과 노인도 외국인 노동자, 새터민과 마찬가지로 소수자라 불리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헌법에서 똑같이 존엄성을 보장하였고 남들과 평등한 주권도 행사할 수 있지만 이 시대의 관습, 통념, 편견이 그들을 소외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조금씩 여성 취업률과 노인 빈곤율 같은 통계를 소수자에 대한 문제제기, 즉 가치 있는 뉴스로 인식하게 되었다.

2015년에 개봉한 영화 <인턴>은 이런 소수자에 대한 위로와 격려로 가득한 영화였다. 9개월만에 잘나가는 온라인 쇼핑몰 벤처기업을 일군 CEO 줄스 오스틴(앤 해서웨이)은 여성이다. 그리고 그 벤처기업 건물에 있었던 인쇄공장 부사장이었다가 70대에 인턴을 지원한 밴 휘태커는 노인이다. 이들이 스스로 소수자라는 인식을 가지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분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를 직간접적으로 보완하고 위로했다.

여성 CEO는 아내와 사별하고 삶의 무료함을 느끼는 70대 노인에게 시니어 인턴이라는 기회를 줬고 그의 능력을 인정한다. “진짜 어른과 어른 같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아요.” 노인 인턴은 일과 직장 문제로 넉다운되기 직전인 여성 CEO에게 적절한 배려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1년 반 전에 혼자 창업해서 직원 220명의 회사로 키운 게 누군지 잊지 말아요.” 영화 ‘인턴’은 이들의 ‘케미’를 훈훈히 전개하며 아름다운 결말에 도달한다.

아름다운, 너무나 아름다운 영화 <인턴>

너무나도 따뜻하고 아름답기에 필자는 영화를 보고 나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과연 우리 시대가 이런 픽션이 현실에 구현되는 것을 허용할까? 더구나 한국적 맥락에서라면? 인터넷 포털로 기사 몇 개만 찾아봐도 부정적인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다.

 

성 평등이 잘된 나라 순위

(자료: 스위스 세계경제포럼)

 

작년 11월 세계경제포럼(WEF)의 <세계 성 격차 보고서 2015>에 따르면 여성의 연 소득(1만1102달러)은 남자(2만554달러)의 절반에 불과했다. 여성은 전문직, 정부 고위직에도 남성보다 비율이 낮은 형편이었다. 성 평등 지수에서 145개 조사 국가 중 115위였던 한국은 그 격차가 더욱 컸다. 여성 의원과 장관 비율이 각각 16%와 6%에 불과했다. 줄스 오스틴 같은 여성 CEO는 국내 상장사 전체의 1%도 되지 않는 0.7%에 머물렀다. 더구나 줄스 오스틴은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경단녀! 한국에서라면 창업이 아니고서야 시간제 인턴에 머물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노인 문제 역시 만만치 않다. 알파고라는 인공지능이 창의와 직관으로 무장한 세계 제1의 바둑기사를 이기는 시대다. 오늘날 사양 산업에 종사하다 새로운 기술에 적응해 재취업하는 사람들은 10%도 되지 않는다. 20세기 초의 절반 이하이다. 노인들의 최대한 장점이라 할 수 있는 과거의 경험과 지혜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물론 영화 속 노인은 조직문화를 유화시키고 CEO에게 적절한 조언을 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기업의 미래를 전망하는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노인이라서 가지는 장점이라기보단 조직에서 부사장까지 지냈고 여유로운 노후생활에 자신감이 붙은 그 분만의 장점이다. 영화에서도 밴 휘태커의 동기 시니어 인턴들은 극 초반 이후 줄곧 보이지 않는다. 30%가 노동시장에 머무르나 대다수가 빈곤 상태에 처한 한국 어르신들에게 자기를 PR 동영상까지 그럴듯하게 제작하는 노인 인턴이 과연 얼마나 와닿을까?

여성과 노인, 의문의 1패

이렇게 여성과 노인 같은 소수자에게 우리네 세상은 각박하기만 하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인턴>은 모두가 행복한 이상향에 대한 동경일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에서 기존 문제를 은폐하려는 경향을 가진다. 일에 치중하고 있는 사이, 남편은 외도하였고 여성 CEO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한다. 그리고 그 책임을 자기에게 지우다가 이내 남편을 용서한다. 밴 휘태커가 용서하지 말라고 했지만 영화는 남편을 용서하는 것이 가족을 지키는 길, 일과 가정의 조화를 찾는 길로 묘사된다. 만약 남성 CEO와 불륜녀의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가정 파괴범인 여성을 용서하는 게 온당하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풀어졌을까? 결코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영화 인턴은 워킹맘과 남편주부는 반대의 경우보다 부자연스럽다는 뉘앙스를 품으며 소수자 문제를 은폐하는 듯 보인다.

벤 휘태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까도 말했듯이 각박하게 변하는 시대에 70대 인턴은 조언자, 격려자의 역할로 일관한다. 너무나도 손주를 챙겨주는 조부모의 인자함을 답습한다. 마사지사 할머니와 동거를 결정하는 것 말고는 극에서 그가 성격을 드러내거나 주장을 관철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선하고 훈훈한 미노년의 모습이나 그렇기에 감춰진 것도 많다. 그가 만약 좋은 배경으로 사람들을 격려하는 노인이 아닌 자기 욕망을 솔직히 표현하고 고집일지언정 논쟁도 서슴지 않는 노인이라면 어땠을까? 꼰대 할아버지라는 비아냥과 함께 인턴 공채에서 바로 탈락하지는 않았을까? 그런 의미에서 벤 휘태커는 우리가 원하는 선에서 만들어낸 그럴 듯한 노인일 수 있다.

봄날을 기다리며

정말 꼬일 대로 꼬인 삐딱한 시선일 수 있다. 주류 영화에서 소외되었던 여성 CEO와 노인을 끄집어낸 것만으로도 소수자 이슈에서 영화 <인턴>이 가지는 위상이 높다고 할 수 있다. 필자 역시 위로와 격려로 가득한 영화 <인턴>을 보며 감동을 받았고, 그 가치를 결코 폄하하고 싶지 않다. 어디까지나 필자의 지적은 현실과 영화 사이의 괴리감, 그리고 그 간극에서 제기되는 소수자 문제의 은폐에 대한 아쉬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영화에서는 노인이 여성을, 여성이 노인을 위로하고 인정해준다. 필자는 더 나아가 우리가 진정으로 소수자들을 온전히 대할 수 있는 봄날이 오길 바라는 바이다. 노동과 소득에서 소외받지 않고, 용서와 배려가 아닌 뻔뻔함으로 일관하는 소수자들도 우리 사회에 담아낼 수 있는 그런 봄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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