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첫째 주
“뭘 상상하든 딱 열 배 더 심하다고 보면 돼요.”
지난주 후배 기자와의 술자리. 신변잡기로 시작했던 만담이 어느덧 글로벌까지 넓어졌다. 미국, 일본에 이어 중국 얘기가 나오자 후배가 격렬히 반응한다. 중국어를 전공하고, 유학경험까지 있던 후배. 물 만난 고기처럼 경험담이 쏟아진다.
“업신여김 당하는 기분을 시도 때도 없이 느껴요. 시골에 가난한 아낙네들조차 외국 유학생이라면 눈부터 내리깐다니까. 대국(大國) 시민이 뭐 벼슬인가?”
법이나 규칙을 대하는 자세도 타인에 대한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그의 표현을 빌면, 커뮤니티 등에서 유행하는 ‘대륙의 흔한 OOO’ 시리즈가 절대 오버나 연출이 아니란다. 오히려 일상에 가깝다고. 공공·시민의식이 크게 떨어진단 얘기다.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는 될 수 있어도, 존경받는 나라는 못 될 겁니다. 지금처럼 ‘룰’을 가벼이 여긴다면 말이죠.”
지난 주, 섬찟한 뉴스가 전해졌다. 중남미에서 급속히 퍼지고 있는 ‘지카(Zika) 바이러스’ 소식이다. 브라질(150만), 콜롬비아(70만) 등 감염 사례가 소리소문 없이 늘고 있는데다, 신생아의 ‘소두증’(Microcephaly·뇌가 비정상적으로 작은 선천성 기형의 하나)을 유발한다는 해괴망측한 증상까지 밝혀지며 세상을 놀래 켰다. 아직까지 별다른 치료법도 없단다. 재작년 에볼라, 지난해 메르스에 이어 또 한번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준비해야 할 판. 일각에선 에볼라보다 은밀하고, 빠르며, 심각한 여파가 우려된다고 경고한다.
호환·마마가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던 시대도 아닌데… 우린 여전히 모기 날개짓에 떨고 있다.
바이러스에게 유일한 살길은 ‘기생’이다. 숙주 없인 생존도 번식도 못한다. 당연히 건강한 세포를 선점하기 위한 고지전이 거세다. 흥미로운 건 이 과정이 굉장히 일사불란하단 거다. 하나의 세포에 다수의 바이러스가 들어가면 죽기 살기로 엉덩이 깔고 앉을 만도 한데, 취탈을 위한 동족상잔은 일어나지 않는다. 가장 먼저 온 바이러스가 남긴 신호에 다른 것들은 두 말없이 다른 세포로 건너뛴다. 일종의 ‘룰’이다. 이견은 없다. 돌발 상황도 없다. 당연히 지체도 없다.(2010년 영국 임페리얼 대학 제프리스미스 연구팀의 ‘바이러스 확산 메커니즘’ 연구 참고) 한번 퍼지기 시작하면, 수백만은 쉽게 넘기는 치명적 확장력의 비결. 확실한 ‘룰’의 존재와 준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녁, 평소보다 귀갓길이 길었다. 30분이면 거뜬한 코스가 세 시간 가까이 소요됐다. 하나 뿐인 차선에서 사고를 낸 것도 모자라 아귀다툼까지 하고 계신 정체모를 운전자님들 덕분이다. 룰을 무시한 그들로 인해 누군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걸 놓쳤을 수도 있다.
경시하면 경시받고, 존중하면 존중받는 것. 당연하고, 절대적이며 때론 치명적인 것.
‘룰’이란 게 그렇다. 반쪽자리 미생물도 그건 안다.
/글: 최태욱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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