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성은 위험하다고? 익명의 선한 영향력 보여드릴게요.”
“익명성은 위험하다고? 익명의 선한 영향력 보여드릴게요.”
2023.08.18 14:41 by 최태욱

‘익명성’이라는 세 글자가 가진 이미지는 긍정보단 부정에 가깝다. 특히 인터넷과 SNS 등 사이버공간에서의 익명성은 온갖 문제를 야기하는 사회적 병폐로 치부될 정도다. 주요 포털 사이트가 연예‧스포츠 기사의 댓글을 막은 것도 물색없이 범람하는 익명의 폐해를 의식했기 때문. 최근 떠들썩했던 소위 ‘칼부림 예고’ 사태 역시 익명성의 흉흉한 단면으로 기억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덮어놓고 외면하기도 마뜩잖다. 익명성이 지닌 순기능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세상을 이롭게 하는 고발‧폭로 기능도 있고, 표현의 자유가 이끌어내는 진솔한 소통이 공감과 위로를 만들기도 한다. ‘익명성’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서비스인 ‘블라인드’가 수많은 갈등을 야기하는 동시에, 특정 기업에 대한 알짜 정보, 고민상담, 이직 및 입사 노하우, 심지어 연애상담까지 나누는 소통 창구가 될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익명성이지만, 그 속의 순기능에만 집중하려는 시도도 많다. 다양한 스타트업들이 선보이는 익명 기반 플랫폼 서비스들이 그러한 시도의 증거다. 자유로운 소통, 진솔한 대화, 따뜻한 공감, 편안한 위로를 표방하며 익명의 악명을 씻어내겠다는 포부다. MZ세대로 분류되는 젊은 세대가 온라인 익명성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한 것도 비즈니스의 당위성을 높인다. 

 

익명의 시대성을 비즈니스로 승화한 스타트업들을 만나보자.
익명의 시대성을 비즈니스로 승화한 스타트업들을 만나보자.

지난 6월, 베이스인베스트먼트와 미래에셋벤처투자 등으로부터 시드투자를 유치한 ‘언박서즈’는 익명의 자유로움을 학교 친구들의 유대감 제고에 활용한 케이스다. 10대들이 익명으로 칭찬을 주고받을 수 있는 서비스 ‘하입(hype)’을 통해서다. 학교 인증과 학교‧학년‧반 등을 선택한 후 자유롭게 마음을 나누는 방식. 론칭 후 반응은 뜨겁다. 중·고교생들 사이에서 “하입을 모르면 대화가 안 된다”는 입소문까지 퍼지며 한 달 여 만에 유저 60만 명을 확보했을 정도다. 

해당 서비스의 강점은 타깃 고객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축적된 서비스 경험이다. 학원 강사 출신의 신희철 대표가 10대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면서 또래집단의 소통 방식을 면밀히 파악했다는 후문. 여기에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동기이자, 다양한 스타트업에서 제품 및 서비스 기획의 경험을 쌓은 권성민 공동대표가 서비스의 완성도를 높였다. 언박서즈 관계자는 “인스타그램이나 틱톡처럼 1020세대들이 매일 들어가서 즐길 수 있는 소셜 미디어 플랫폼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직장을 나온 사람들끼리 헛헛한 마음을 나누는 익명 소통 공간도 있다. 은퇴‧퇴직자들의 ‘블라인드’를 꿈꾸는 ‘웨이어스(WAYUS)’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4월, 은퇴자 재교육 플랫폼 ‘기술자숲’이 경남은행 디지털전략부와 함께 만들었다. 해당 서비스가 익명을 통해 끌어내려는 가치는 공감이다. 허무함, 고립감, 단절감, 막막함 같은 정서를 공유한 은퇴자들끼리 진솔한 속내를 나누면서, 지금까지의 생활을 정리하고 새롭게 펼쳐질 무대를 기약한다. 경험자들 사이에서 “가족에게 차마 못할 얘기도 속 시원히 풀어낼 수 있는 공간”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단순히 넋두리만 늘어놓는 공간은 아니다. 은퇴 전후의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고,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힘도 얻는다. 은퇴 준비부터 재교육, 창업, 금융‧재무 등 알토란같은 정보들의 공유를 통해서다. 철저한 익명성을 통한 공감과 응원은 안도감과 연대감을 배가시키는 힘으로 작용한다. 

 

익명성을 기반으로 하는 공감은 안도감과 연대감을 배가시킨다.
익명성을 기반으로 하는 공감은 안도감과 연대감을 배가시킨다.

올해 초 ‘브이엔티지(VNTG)’로부터 시드투자를 유치하며 가능성을 인정받은 ‘루덴씨티’는 현대인이 가진 마음속 응어리를 푸는 데에 익명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익명 고민 대화 및 마음 챙김 서비스 ‘42사이’가 바로 그 솔루션. 고민이나 우울감에 시달리는 유저가 일상적·심리적 조언과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고민상담 및 대화 플랫폼이다. 

고민을 안고 있는 이용자가 익명으로 사연을 등록하면, 적합한 대화 성향을 지닌 ‘리스너’가 매칭되어 상담이 이뤄지는 방식. 상담 이후 오프라인 모임, 코칭 콘텐츠, 성격분석 콘텐츠 등으로의 연계도 가능하다. 백종민 루덴씨티 대표는 “우리의 지향점은 캐주얼 멘탈 웰니스 플랫폼”이라면서 “따뜻한 친구와 함께 적극적으로 마음을 가꾸어갈 수 있도록 매칭 시스템을 더욱 고도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해당 스타트업에 투자를 감행했던 브이엔티지 관계자는 “익명으로 진정성 있는 대화 상대를 매칭시키는 독특한 접근방식과 사업전략이 돋보였다”고 평가했다. 

 

필자소개
최태욱

눈이 보면,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액션 저널리즘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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