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넷째 주
쥐고 있던 리모콘을 집어던지려다 간신히 참는다. 넋 나간 사람마냥 TV화면만 응시한다.
그리곤 한숨 섞인 혼잣말을 내뱉는다. “내가 다시 야구 보면 사람 아니다…”
야구광팬인 내가 (응원하는)팀의 패배를 마주하는 자세다. 물론 질 수도 있다. (사실 질 때가 더 많은 팀을 응원한다.) 하지만 결코 납득할 수 없는 패배도 있다. 경기 막판 어처구니없는 수비 실수로 게임을 내줄 때다. ‘하아… 서너 시간 동안 뭘 했나’ 싶은 생각에 야구팬인 걸 후회하고, 급히 다른 취미를 물색해보기도 한다. 수비 때문에 지는 게임은 그 정도의 데미지다.
비단 야구뿐인가. ‘전쟁론’을 쓴 독일의 전략가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건 ‘수비와 운’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아마 우리나라의 60년 월드컵 도전사에서 가장 많이 거론됐던(혹은 강조됐던) 용어도 ‘수비 조직력’일 거다.
지난 주 세상은 냉동고였다. 미국·중국 등 세계 곳곳에 유례없는 추위와 눈보라가 닥치며 피해가 속출했다. 항공편 줄 취소, 사재기 극성이란 뉴스에 ‘스노마겟돈’, '스노질라' 같은 무시무시한 용어까지 등장했다. 서울 역시 5년 만에 한파특보란다. 체감온도가 영하 20~30정도까지 떨어졌다하니, 말 그대로 ‘추워죽겠는’ 날씨다.
불과 며칠 전에 본 것 같은데. ‘따뜻한 겨울’ 탓에 국내 대표 겨울축제들이 줄초상 나고 있다는 기사를… 갑작스런 이상기후에 분석도 쏟아진다. 발음도 민망한 ‘우랄블로킹’이니 ‘제트기류’니 하는 것들. 근본적인 원인으론 북극 얼음을 꼽는다. 원래 북극의 한기는 그 안에서 빙빙 도는데, 빙하가 녹으면서 ‘빙빙’의 힘이 약해졌단다. 한기의 이탈을 막아줄 빙하가 부실해지니 하염없이 남쪽으로 미끄러져 왔다는 설명.(실제로 지난해 북극 빙하는 관측이 시작된 1979년 이후 가장 적은 수준이었다고 한다.)
결국 지금 이 역대급 엄동설한의 원인도, 북극 빙하의 수비 조직력에 구멍이 뚫렸기 때문인 거다.
수비가 중요한 이유는 ‘전제’이기 때문이다. 안정의 전제요. 나아감의 전제다.
야구에서 수비가 불안해지면 선수들은 평소보다 긴장하고, 두려움도 커진다. 결국 평정심을 잃고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진다. 화려한 건 공격이지만, 수비가 튼튼하지 않으면 그 화려함을 뽐낼 기회조차 없다.
갑자기 내 인생의 수비벽이 허술해 뵌다.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단단하게 하는 일. 가족이나 친구,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고 챙기는 일. 가고 있는 방향이 맞는지 반추하는 일에 무척이나 인색했다. 빨리 ‘스코어’를 만들고 싶은 건 아닌가. 진일보, 성취, 성공 같이 공격에만 정신 팔린 건 아닌가.
손자는 “자신을 지키며 적을 스스로 무너지게 하는 게 상책, 적을 공격해 무너뜨리는 것은 하책”이라고 했다. ‘자수성가’ 보다 ‘수성’이 먼저다.
/글: 최태욱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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