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밖에 찬 바람이 윙윙거려
이곳은 나의 나라
시를 쓰지 말아야 하는 건 슬픈 천명(天命)
하지만 한 줄 시를 적어볼까
주름살과 사랑내 포근히 품긴
어머니의 인사를 뒤로 한채
두터운 점퍼를 입고
밥벌이를 향해 간다
생각해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한파가 몰아친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창 밖은 남의 나라
내 안에 겨울이 속살거리는데
눈을 뜬 채 어둠을 조금 내몰고
칼날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영혼 없이 시를 쓰는 것.
누구에게 소용이 있을까.
원문<쉽게 쓰여진 시>
윤동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생각해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