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신에게 친숙한 바다가 있다. 부산 사람이라면 더 그렇다. 집 근처에 해수욕장 하나씩은 있는 환경 덕분이다. 개중에 더 마음 끌리는 곳도 있기 마련. 내겐 ‘다대포 해수욕장’이 그러하다. 아주 어릴 적부터 이곳이 선물해 준 한 아름의 추억들이 여전히 살아 넘실댄다.
꼭 이런 각별함 때문이 아니더라도, ‘다대포’는 꽤 매력적인 바다다. 일출과 일몰을 함께 볼 수 있는 유일한 해수욕장이며, 조수간만의 차가 큰 덕에 바다와 갯벌을 한꺼번에 경험할 수 있다. 다른 곳이 해돋이 축제로 붐빌 때 해넘이 축제를 열 정도로 아름다운 일몰은 다대포를 더 특별하게 한다. 수많은 사진 동호회원들은 그 일몰의 아름다움을 포착하기 위해 오늘도 이곳을 찾는다.
다대포의 일몰은 특별하다. 물이 빠져나가는 시간과 맞물려 해변을 편하게 누빌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쪽에서 사진을 찍어도 괜찮은 작품을 건질 수 있다. 참고로 해변 왼편에서 오른편을 바라보는 사진이 더 잘나온다. 필자의 경험과 다른 이의 사진 찍기를 유심히 관찰한 결과다.
아름다운 일몰 덕분에, 심지어 매년 12월 31일에는 이곳에서 다대포 ‘해넘이’ 축제가 벌어진다. 콘서트, 사물놀이, 불꽃놀이 등이 화려하게 펼쳐지며 한 해의 마지막을 유쾌하게 장식할 수 있게 해 준다.
| 다대포 해수욕장
부산 사하구 다대동에 위치. 사하구가 부산의 ‘구석’이라는 인식이 강해 잘 알려지지 않다가 인근에 감천문화마을과 을숙도 철새도래지 등이 유명해지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늘기 시작했다. 부산역에서도 의외로 그리 멀지 않다. 부산역 맞은편 버스정류장에서 1000번 좌석버스를 타면 한 번에 다대포 해수욕장에 도착한다.(현재 지하철은 개통 준비 중이라 공사가 한창이다.) 해수욕장 주변이 신시가지라 해변 치고는 다소 차분한 분위기이지만, 여름이면 각종 해양 스포츠와 ‘꿈의 낙조분수’로 연평균 100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다녀가곤 한다.
다대포 해수욕장 얘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 바로 ‘꿈의 낙조분수’다. 이곳에서 매년 4월에서 10월까지 밤 8시에 벌어지는 음악과 물,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모습은 꽤나 장관을 이룬다. 알고 보니 세계 최대 규모의 바닥분수라고 한다. 큰 도로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바로 보이는 곳에 위치해 접근성도 무척 좋은 편.
한 유튜브 유저가 올린 장기하와 얼굴들의 ‘풍문으로 들었소’ 낙조분수 영상. 무척 흥겹다. 실제로 보면 저것보다 딱 5배는 더 멋지다는 사실. 물이 약간 튀긴 하지만, 여름엔 그마저 시원해서 좋다.
다대포로 발길을 이끄는 또 하나의 매력 포인트는 바로 해변을 따라 뒤쪽으로 조성된 ‘해상공원’이다. 필자가 어릴 땐 음식 파는 포차나 좌판뿐이던 곳이었는데, 몇 년간의 공사 끝에 어느덧 나름대로 울창한 숲이 우거진 멋진 산책 코스가 생겨났다. 복잡하고 큰 코스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해변을 따라 한 겹 더 새롭게 난 길에서 많은 사람들은 휴식과 간단한 운동을 만끽하곤 한다.
지난 17일 직접 걸어본 다대포 산책로. 한 겨울이라 너무 춥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예상 외로 많은 분들이 자신의 애완동물들과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아마도 겨울 바다를 즐기기에 가장 적합한 곳은 부산일 거다.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지 않은 기온 탓에, 해변의 칼바람마저도 상쾌하게 느껴진다.
산책로를 따라 바다로 나가면 낯선 물체 하나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지난 가을 있었던 <바다미술제>에 출품된 작품들 중 세 점이 다대포에 영구 설치되었는데, 그 중 하나다. 특별히 이 작품은 나머지 두 작품들과는 달리 바다미술제 기간 전시되었던 위치 그대로 자리 잡았다. 덕분에 겨울 바다의 스산한 풍경이 조금은 누그러진다.
| 바다미술제
1987년 ‘88서울올림픽’ 문화행사로 처음 기획되어 매해 부산에서 열렸다. 2000년부터 2010년까지는 부산비엔날레의 일부로써 존재했지만, 이듬해 다시 독립하여 홀수 해마다 부산 곳곳의 해수욕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화예술 축제다. 2015년 열린 ‘2015 바다미술제’에선 16개국 34명(팀)의 작품들이 전시됐다. 그러니까 지금 다대포 해수욕장에 영구 설치된 세 점은 34점의 작품들 속에서 살아남은 셈이다
바람에 쉬이 날리는 고운 모래를 밟으며 바다 가까이로 나아가면 해수를 머금어 조금은 단단해진, 그래서 걸음을 편안히 해주는 새로운 땅이 나온다. 바닷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낭만을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 해안을 따라 정처 없이 걷다 보면 왼쪽 끝에 몰운대 해안산책로가 모랫길에 지친 관광객을 반긴다. 코스가 길지는 않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만만하게 걸을 수 있는 곳. 산책로의 가장 돌출된 부분에 있는 전망대로 가면 다대포 해수욕장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포즈를 취한다. 사진을 찍는다. 상기된 표정들이다. 겨울의 추위는 이들에게 별 문제가 안 되는 모양이다. 그래, 사진이 잘 나오기만 한다면야. 다대포는 역시 쨍쨍할 때보다는 늦은 오후의 석양이 아름답다. 지는 해를 배경으로 웃는 얼굴 한 번, 나도 남겨본다.
다음이야기 노상 산책만 할 거냐고? 무슨 소리. 해변을 풍요롭게 하는 건 멋진 카페와 맛있는 음식. 다대포 주변에 맛집과 명소, 토박이가 매의 눈으로 꼽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