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생태계가 무르익으면서 ‘오픈 이노베이션’에 대한 자세도 점차 진지해지고 있다.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은 문자 그대로 ‘열린 혁신’을 추구하는 방법론이다. 외부의 다양한 자원과 협업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목표다. 국내에선 단순히 기술조달이나 아웃소싱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했지만 최근 위상이 조금 달라졌다.
특히 급변하는 디지털 트렌드와 다양한 분야에서 검증되고 있는 스타트업의 기술력은 대기업-스타트업 간 오픈 이노베이션의 물꼬를 트기에 충분했다. 벤처투자 시장이 때 아닌 혹한기에 직면한 것도 다채로운 협업 창구를 물색케 하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다. 신진오 한국벤처창업학회 회장은 지난달 열린 ‘제2회 스타트업 포럼’에서 “올해 벤처투자액이 급락하는 상황에서 오픈 이노베이션이야말로 민간투자 활성화를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최근 DB그룹 전체 계열사와 함께 할 스타트업들을 모집하고 있는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의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은 대표적인 대기업-스타트업의 협업 사례다. DB그룹은 금융, 보험, 제조, 서비스 등 자사의 벨류체인에서 ‘디지털 전환’을 꾀할 수 있는 기술 및 서비스를 발굴하고, 선정된 스타트업은 대기업의 다양한 지원과 연계 투자를 통해 실질적인 성장을 꾀할 수 있다.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는 지난 2021년부터 롯데, KT, LG, CJ. KB국민은행, 이노션 등 다양한 분야의 대기업들과 꾸준히 오픈 이노베이션 활동을 펼쳐왔다. 지난해 해외의 VC로부터 16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며 존재감을 뽐냈던 AI 보안 스타트업 ‘딥핑소스’가 이를 통해 빛을 발한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15일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유럽 최대의 스타트업 행사 ‘비바테크 2023’에 참가한 로레알 그룹이 우리나라 중소벤처기업부와 오픈 이노베이션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국내 뷰티테크 분야의 유망 기업을 지원하는 ‘빅뱅’ 프로그램을 출범한다는 내용이었다. 바바라 라베르노스 로레알 그룹 기술 총괄 수석 부사장은 이 자리에서 “이번 협약은 로레알이 북아시아에서 오픈 이노베이션을 주도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라며 “빅뱅 프로그램을 통해 한‧중‧일의 스타트업과 협력하고 그들의 창의성과 혁신이 전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도울 계획”이라고 전했다. 로레알 그룹은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디지털과 AI기술을 접목한 뷰티테크, 디바이스, 피부 진단 및 전달 시스템 분야의 스타트업과 협력을 도모할 예정이다.

해외의 선도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국내 스타트업의 해외 수출을 모색하는 독특한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이 펼쳐지기도 한다. 초기투자기관 ‘더인벤션랩’의 ‘콜라보 위드 리뷰티’가 그 주인공이다. 해당 프로그램은 베트남에서 연 매출 100억을 돌파한 ‘리뷰티(Reviewty)’와 함께 한국의 마이크로 코스메틱 브랜드의 베트남 수출을 유도하는 활동이다. 베트남 내 뷰티 인플루언서 네트워크와 현지 온·오프라인 유통망이 함께 한다는 것도 큰 강점. 리뷰티 운영사인 ‘바이비’의 박진감 대표는 “현재 베트남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뷰티-건기식 시장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탄탄히 플랫폼과 경쟁력있는 브랜드가 결합돼야 한다”면서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상품력이 있지만 수출 및 판로 모색이 쉽지 않은 한국의 뷰티-건기식 브랜드의 베트남 수출을 적극적으로 타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해당 프로그램은 브랜드 IP인수 및 독점계약 트랙, 베트남 독점 수출 대행계약 트랙 등 2가지 분야에 걸쳐 7월 중순까지 참가 기업을 모집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