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부모 할 것 없이 모두 ‘책 마법’에 홀렸어요! (전편)
아이, 부모 할 것 없이 모두 ‘책 마법’에 홀렸어요! (전편)
아이, 부모 할 것 없이 모두 ‘책 마법’에 홀렸어요! (전편)
2016.01.06 20:40 by 강연우

“동네서점은 오래 사귄 친구의 집과 같다.” (작가 피코 아이어)
친구의 집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전국에 남은 서점 1624곳(2013년 기준), 10년마다 4곳 중 1곳이 문을 닫는다. 이런 ‘종이책 멸종 시대’에 살아남은 동네서점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눈물 나는 분투기와 훈훈한 사람 냄새가 함께하는 그곳. 동네서점의 문을 열어본다.

7.8 대지진에 무너진 네팔 아이들을 돕고, 친환경 유기농 식당 '에코토피아'를 만들 게 된 사연까지, 보통 서점이라곤 볼 수 없는 '인디고 서원'의 힘은 어디서 왔을까? 그 출처를 알아본다.

1996년 1월 문을 연 대전의 대표 향토 서점. 원래 있던 900평대의 은행동 지점과 둔산동 지점을 2007년 6월 8일 폐쇄하고, 지금의 선화동 자리로 통합했다. 15년 전부터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책 읽어주기 행사를 진행해 ‘책 읽어주는 서점’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 직원들의 책 읽어주기 봉사활동을 비롯해 ‘일요일은 읽요일이다’ ‘토요 책방나들이’ 등 독서 문화를 알리기 위한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마련하고 있다.

“책 마법사가 책 읽어줘요!”

지난 2일 이동선(54·계룡문고 책방지기)씨의 목소리가 계룡문고 안을 가득 채웠다. 아이 손을 잡고 서점에 온 엄마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책을 직접 읽어 준대!” “책 마법사가 누굴까?” 엄마들이 아이 손을 잡고 삼삼오오 나무 바닥으로 된 아동서적 코너로 모여들었다. 이미 책을 읽던 아이들도 그림책을 접고 다가가 앉는다.

주황색 리본 장식의 고깔모자를 쓴 책 마법사가 벽돌집 사이에서 나타나자 아이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법사가 주황색 망토를 휘날리면서 아이들 틈으로 다가가 물었다.

“안녕? 나는 책 마법사야, 너는 어디서 왔니?” “당진이요” 아이가 수줍은 듯 엄마 품에 몸을 구겨 넣으며 말했다. 망토의 주인공은 바로 계룡문고 이사인 현민원(57)씨. ‘빛그림’이라 불리는 움직이는 동화를 보여주면서 여러 가지 목소리로 책을 읽어준다고 해서 직원들이 붙인 별명이 책 마법사다.

책 읽어주기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현민원(57·계룡문고 이사) 씨의 모습.

책 마법사 현씨는 매일 오전 ‘즐거운 서점 견학’ 프로그램을 통해 변장을 하고 아이들에게 빛그림을 보여준다. 지역 어린이집, 초등학교에서 견학 신청을 미리 받아 무료로 진행하는 행사. 오전 10시 서점에 온 아이들은 1시간 30여분 동안 책 마법사의 책 읽기, 서점 견학을 체험한 뒤 자기가 사고 싶은 책을 한 권 고른다.

“그냥 읽어주는 차원이 아닌, 변장까지 해서 보여주니까 아이들 귀에 쏙쏙 박히죠. 매번 읽어주기가 끝날 때면 아이들이 책 마법사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니까요.”

아이들 뒤에서 그녀의 책 읽기를 지켜보던 우현명(54·윤동주문학사상 대전지부장)씨가 웃으며 말했다.

'토요 책방나들이' 행사에서 '책마법사' 현민원 씨의 책 읽어주기에 집중하고 있는 아이들. (계룡문고 제공)

책 마법사가 책을 읽어주면 아이들은 책과 사랑에 빠진다. 견학 올 때는 장난치거나 떠들던 50여명의 아이들이 오후에 돌아갈 때는 버스 안에서 책 읽느라 다들 조용해질 정도.

서점을 방문한 엄마들 중엔 “우연히 서점에 한 번 와봤는데, 이후 아이들이 ‘우리 서점가요’라고 너무 졸라서 다시 왔다”며 책 읽기 부작용(?)을 호소하기도 한다.

엄마들은 ‘도대체 뭐가 그렇게 특별하고 재미있는지 찾아보자'는 반응이다. 이날 서점을 방문한 강공자(대전 신성동)씨는 “주말마다 딸 아이 손을 잡고 서점에 나들이 온다”며 “그림책을 빛그림으로 보여주면서 책 읽어주는 서점은 아마 계룡문고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계룡문고의 책 읽어주기는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씨는 평소에도 소리 내서 책을 읽는 걸 즐겼다고 한다. 그러다 “주변 사람들과 함께 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에 대전의 지역 정보지에 책 읽어주는 엄마를 모은다는 자원봉사자 모집 광고를 냈다. 이후 현씨는 친척 동생인 이동선 계룡문고 대표의 권유로 서점 견학 프로그램의 일부로 ‘책 읽어주기’ 과정을 넣고 스스로 책 마법사 역할을 맡았다.

“기업의 견학 프로그램처럼 서점도 견학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서점 견학프로그램 중에 책 읽어주기를 넣으면 되겠다 싶었어요,”

처음부터 반응이 좋았던 건 아니다.  프로그램 참여자를 모집하는 공문을 대전 지역 유치원과 어린이집 70여 곳에 보냈지만, 겨우 한 곳에서 답변이 왔을 정도.

“활발히 하는 데 기간이 꽤 걸렸어요. 한 10년 정도 되려나? 안 돼도 어떡해요, 무작정 했죠. 각종 자료를 보내 가면서 설득을 했어요.”

5년 전부터 좋은 반응이 왔다. 계룡문고의 활동에 공감한 몇몇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교사 연수나 다른 학교로 옮기는 과정에서 프로그램을 소개했고, 이내 입소문이 났단다. 지금은 평일 오전 서점견학 일정이 한 달 내내 꽉 차 있을 정도로 참여율이 높다. 인터뷰 중에도 이동선 대표의 전화가 두 차례 울렸다. 세종시 유치원에서 서점견학 프로그램에 참가하겠다는 전화였다.

“어린이집, 초등학교, 보건소, 산후조리원까지 다 다닙니다.”

이 대표가 전화를 끊고 말했다. 계룡문고의 ‘책 읽어주는 아빠’로 불리는 그는 ‘책 마법사’ 현민원씨와 함께 대전 지역 기관들을 가리지 않고 다니면서 강의를 진행한다.

“의사가 아픔을 진단하듯 저도 강의에서 ‘아이들이 왜 책을 싫어하는가’를 진단해요. 책도 과식하듯 한꺼번에 너무 많이 읽는 게 문제죠.”

이 대표가 말하는 책 읽기는 밥 먹는 것과 같다. 첫째, 밥을 한 번에 한 그릇만 먹듯이 책도 한 권씩 사야 한다. 둘째, 밥 먹고 식후활동 꺼리는 것처럼 책을 읽어준 뒤에 가르치거나, 묻거나, 설명하거나, 평가하면 안 된다. 아이들이 책 읽은 뒤 활동에 부담을 느끼게 되면 책 읽기 자체에 흥미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 셋째, 기계음이 아닌 목소리로 직접 책을 읽어줘야 한다. 그래야 부모와 아이 간 신뢰감이 형성된다. 

아이들 사이에서 이동선 대표는 ‘왜요 아저씨’로 통한다. ‘왜요 아저씨’는 <왜요>라는 동화책을 자주 읽어줘 아이들이 붙여준 이 씨의 별명. 책 마법사가 책 읽기를 끝내면 아이들은 “왜요 아저씨~”를 외치는데, 이 때 이 씨가 나타난다. 무릎 꿇고 아이들 시선에 눈을 맞춘 이 씨는 책에 관한 흥미를 돋울 수 있는 책 위주로 읽어준다. 반복되는 문구로 아이들과 소통을 이끌어내기 좋은 <왜요>나 <또 읽어줘> 같은 동화책이 인기다. 책 읽기가 끝나면 책 마법사가 정한 아이들에게 그날 읽은 책에 사인을 해 선물한다.

'왜요 아저씨'를 영상으로 만나보자.

매일 있는 서점 견학 프로그램 외에도 계룡문고는 매월 둘째 주 토요일 3시마다 ‘즐거운 토요 책방나들이’ 행사를 연다. 지역 주민들이 서점을 내 집 드나들 듯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일종의 캠페인이다. 책방 나들이는 오는 9일 128회째를 맞는다. 14년째 근무하고 있는 김용기(52·차장)씨는 “서점은 책을 직접 만져보고 맛볼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며 “계룡문고는 그런 역할에 충실한 것 뿐”이라고 했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아이와 서점에 들른다는 강공자(대전 신성동) 씨는 “다른 대형서점에 가면 어린이 책이 대부분 비닐포장이 되어 있어서 읽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면서 “여기선 아이들이 맘껏 책을 읽어보고 고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이동선 대표 뒤로 아이들이 바닥에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아동서적 코너가 보인다.

안 읽고는 못 배길 걸, 계룡문고의 추천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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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밖 아이들 책으로 만나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이 책을 통해서 달라지는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사람을 바꾸는 책의 힘을 느낄 수 있어요." (이동선)

계룡문고가 '너는 고객이고 나는 서점'이라는 관계를 넘어서 지역과 함께 살아가는 대전의 향토서점이 된 사연, 후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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