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살아있네!” 청소년 인문학 서점 '인디고 서원' (후편)
“인문학, 살아있네!” 청소년 인문학 서점 '인디고 서원' (후편)
“인문학, 살아있네!” 청소년 인문학 서점 '인디고 서원' (후편)
2015.12.23 14:27 by 강연우

“동네서점은 오래 사귄 친구의 집과 같다.” (작가 피코 아이어)
친구의 집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전국에 남은 서점 1624곳(2013년 기준), 10년마다 4곳 중 1곳이 문을 닫는다. 이런 ‘종이책 멸종 시대’에 살아남은 동네서점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눈물 나는 분투기와 훈훈한 사람 냄새가 함께하는 그곳. 동네서점의 문을 열어본다.

책에서 배운 걸 행동으로 옮기는 서점 '인디고 서원'. 인디고 서원을 대표하는 행사 '정세청사' 현장을 방문,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청년들이 펼치는 인문학 토론의 뜨거운 열기를 직접 느껴본다.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서점’을 세운다고 했을 때 만류도 많았다. 인터넷 서점이 활성화되고, 전자책 사용이 본격화된 2004년 무렵이었다. 하지만 허아람(44) 대표는 왠지 모를 확신이 있었다. 인터넷 서점과 전자책이 할 수 없는 동네서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산의 대치동이라 불릴 만큼 학원이 빽빽한 남천동 골목에서 ‘인디고 서원’은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서점’을 내걸었다. 허 대표가 처음 서점을 열 때 기자들을 모아놓고 “빚을 내서라도 5년은 간다”고 선언한 게 벌써 11년이 됐다.

부산에서 독서 지도를 했던 허 대표는 여행 중 경험한 서점 문화를 인문학에 접목시켰다. 유럽의 70여 군데 도서관에서 느끼고 배운 점을 기록해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단숨에 서점 설립을 기획했다. ‘쪽빛’ 즉 청소년을 뜻하는 ‘인디고’이란 이름도 이때 붙였다.

인디고 서원이 올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판매한 2016년 달력 프로젝트 광고. 사진작가 나렌드라 슈레스타가 찍은 네팔 아이들의 행복한 모습을 다이어리와 달력에 담았다.

인디고의 ‘행동하는 힘’이 빛을 발한 건 지난 4월이다. 네팔에서 7.8의 대지진으로 8800명이 죽고 300만 명의 이재민이 생겼다. 소식을 들은 인디고서원은 곧바로 구호기금 900만원을 전달했다. 히말라야 산자락에 작은 도서관을 짓기 위해 모금하고 있던 돈이었다.

이 씨는 “아이들을 살리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어요. 2007년부터 네팔과 연계를 맺고 있었는데, 지진이 난걸 보고 도서관 건립기금을 전부 구호기금으로 전환했죠”라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인디고서원은 한발 더 나아갔다. 네팔 대지진 직후 100여명의 중‧고등학생들이 ‘세계시민으로서 그들의 고통에 대한 책임’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했다. 청년기자 6명은 토론 결과를 정리해 인디고 청소년들의 계간지 <인디고잉> 47호에 실었다.

10월 말에는 구호기금에 쓸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했는데, 1달 만에 목표 금액 300만원을 넘겼다. 이 씨는 “매년 달력프로젝트를 하는데 이번엔 네팔 풍경을 계속 찍어온 사진작가 나렌드라 슈레스타의 사진을 달력에 담아서 ‘텀블벅’에서 판매했어요”라고 말했다.

에코토피아의 최숙정(22, 아르바이트생)씨와 김수연(32, 매니저)씨. 방금 만든 유기농 레몬청을 들고 미소 짓고 있다.

“당분간은 네팔 지진 피해를 돕는데 쓰기로 했어요. 2007년부터 ‘네팔 도서관 짓기’에 썼던 수익을 올해부터 구호기금으로 돌렸습니다.” 에코토피아(Ecotopia)에서 레몬을 썰던 김수연(32·매니저)씨가 말했다. 에코토피아는 인디고서원에서 만든 ‘착한 식당’이다. 유기농 재료나 공정무역을 거친 재료만 고집하는 것이 특징. 유기농 쌀과 채소를 한살림과 생협에서 공급받아 비빔밥, 카레를 만들어 내놓는다. 인디고서원의 간판 행사인 ‘수요 독서회’와 ‘청년들이 저녁식사’가 격주로 이곳에서 열린다.

에코토피아도 인디고 아이들의 생각에서 나왔다. 책을 통해 육류 생산 과정을 알게 된 인디고서원 청소년들이 유기농과 채식을 고집하는 식당 ‘에코토피아’를 직접 기획한 것. 인디고서원 청소년 교육 팀장으로 활동하는 유진재(26·부산대 경제학과) 씨는 에코토피아를 “열대우림 파괴, 육우 사육, 햄버거 생산으로 이어지는 참혹한 ‘햄버거 커넥션’을 해결하기 위한 시도였다”고 말했다.

“단순히 ‘책 읽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을 읽고, 내 주위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이걸 어떻게 해결해나갈 것인지 고민하는 게 인디고서원의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탄생해왔습니다.” (유진재·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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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고서원은 지금까지 한번 시작한 사업을 중단한 적이 없다. <인디고잉>이나 ‘정세청세’ 등 굵직한 사업들은 모두 “다 목적이 있어서 생겨난 사업”이라는 이유에서다. 한 사업이 시들해지면 그걸 지속하기 위한 다른 사업을 만들어서라도 기존에 일들을 계속해나가는 게 원칙이다. 이런 원칙 때문에 힘든 일도 많았다. 이 씨는 “우여곡절은 굉장히 많죠. 처음부터 나열하려면 끝도 없어요. 특히 부산에 있다는 게 가장 큰 약점이죠.”라며 “서울 등 다른 지역에서는 관광버스를 대절해 단체로 오거나 시청이나 백화점에서 강의 섭외도 들어오지만, 오히려 부산에서 그런 일이 드물어요. 선생님 섭외부터 책 구하는 것까지 처음엔 쉬운 일이 하나도 없었죠.”라고 전했다.

하지만 인디고서원은 계속 이곳 남천동 골목을 지켜왔다. 2007년에 4층 건물로 옮긴 것이 전부다. 서울지역에서 여러 차례 섭외도 있었지만 이 씨는 거절했다. “이미 만들어진 곳에 들어가는 것만큼 의미 없는 일은 없다고 생각해요. 이곳에 있기 때문에 인디고서원의 의미가 더 큰 거죠. 아직 많이 모자란 것 같지만 이제는 조금 기반이 다져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부산에 자리 잡길 잘 했어요.”

매달 한두 명씩 인디고서원 분점을 내고 싶다며 서점에 직접 찾아오기도 한다. 이때마다 이 씨는 같은 말로 사람들을 돌려보낸다. 이 씨는 “찾아오는 분들에게 인디고서원 안에 있는 콘텐츠는 충분히 가져가시되 인디고서원의 이름이 아니라 각자의 정체성을 찾으라고 꼭 말씀 드린다”며 “제2, 제3의 인디고서원보다 새로운 정체성이 있는 서점이 생기는 게 의미 있지 않겠어요?”라고 반문했다.

학원가가 밀집한 남천동 골목에 자리 잡은 인디고서원 건물. 2007년 13평 공간에서 지금의 지상 4층 지하 1층 건물로 옮겨왔다.

인디고서원에는 문제집이 없다. 11년의 노하우를 담아 인디고 운영진이 매달 엄선한 인문학 도서만 책장에 꽂아 놓는다. ‘참신한 내용’이 가장 큰 선정 기준이다. 그러다보니 선정한 책 대부분이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에 없다. 이윤영 씨는 “일부러 베스트셀러를 제외하지는 않지만, 골라 놓고 보면 그런 책들은 거의 없어요.”라고 전했다.

가격은 정가 그대로 받는다. 할인은커녕 멤버십이나 쿠폰제도도 없다. ‘책의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건립 초부터 11년 동안 인디고서원은 도서정가제를 지키고 있다. 이 씨는 “도서정가제 자체보다 좋은 책이 만들어질 수 있는 구조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책이란 게 지나치게 가격을 올려 받는 물건이 아니잖아요. 가격을 깎게 되면 분명히 누군가에게 손해가 갈 거예요. 그게 작가, 서점, 독자 누구든 될 수 있어요. 작가가 또 다른 책을 만들고, 문화공간인 서점이 유지되고, 나도 소비자로서 좋은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가치 있게 만드는 게 도서정가제죠.”

♥안 읽고는 못 배길 걸! ‘인디고서원’ 추천 필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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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고잉> ‘청소년들이 직접 만드는 인문교양지’

“이 아이들이 뛰어나거나 훌륭한 건 없어요. 하지만 유일하게 책을 읽고, 긴 사유시간을 갖고 성실하게 글을 썼다는 게 특별하죠. 100여명의 중고생들이 일주일에 한 권씩 책을 읽고 감상문을 적어온 걸 토대로 청년 기자들이 3개월 마다 만듭니다. 내용이 가벼울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일단 펼쳐보세요.”

다음이야기 "'계룡문고'에 책 마법사가 왔다고 전해라~" "우리 애는 계룡문고가 다 키웠쥬~." 서점에 아이를 보낸 엄마들이 한마디씩 한다. 아이들은 계룡문고의 유명인사 '책 마법사'의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기면서 싸인해달라 한다. 15년 째 대전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게 된 계룡문고, 어떤 사연이 숨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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